[스크랩] 감사 중의 감사
감사 중의 감사
시116:12-4
상도중앙교회/박봉수목사
얼마 전에 백화점에를 갔습니다.
날씬하고 예쁜 아가씨 둘이 빨간 유니폼을 멋지게 차려입 고 큰절을 하면서 문 앞에서 저를 맞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손님!" 처음에 는 황송했습니다. '내가 어디 가서 이런 대접을 받아나?'
어리숙한 마음에 무엇인가 많이 사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볼일을 보고 정문을 빠져나가는데 이번에는 다른 아가씨들이 큰 절을 하면서 또 인사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손님!" 나가면서도 또 고맙다고 인사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인사하는 아가씨들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피곤에 지쳐 보였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전혀 없는데 그 입으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그 감사 인사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감사 인사조차도 돈주고 사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돌아오면서 곰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드리는 감사를 어떻게 받으실까?
혹시 지금 내 기분처럼 내가 드리는 감사에 식상하시지는 않으실까?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아가씨들은 감사 인사를 하라고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감사는 하지만 정말 감사하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참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강요된 감사, 형식적으로 드리는 감사, 감사를 위한 감사를 드려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참된 감사를 가르쳐줍니다. 감사 중의 감사를 보여줍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시인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내게 주신 모든 은혜"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분명히 깨닫고 있었고, 조목조목 기억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주일학교 교사하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추수감사절이 돼서 오후 예배 때 백일장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글짓기 제목을 정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해요]
아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글짓기를 했습니다.
나중에 쓴 것을 살펴보니까 대충 요지가 이런 것입니다.
금년에도 풍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엄마 아빠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교회 다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등
아이들이 평소에는 감사하게 생각지 않았는데 글짓기를 하려니 감사 조건을 찾아야 하겠고,
그래서 머리로 짜낸 감사를 잔뜩 써 놓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감사는 머리로 생각해 낸 감사여서는 안됩니다.
생각해서 찾아낸 감사,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발견한 감사 이런 감사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감사는 깨달은 감사여야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여야 합니다.
정말 내 중심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 그 감사가 감사 중의 감사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이 짧은 시에서 시인은 여러 차례 자기가 기도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여러 차례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음 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이렇게 들어주셨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렇게 역사하셨다!"
구체적인 일에서 실제 사건 속에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그는 그 누가 막아도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깨달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내게 누구이신가?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신가?
이런 사실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지난 10월 4일자 신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에 새길만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동아일보와 국민일보가 미국의 뉴욕타임지의 기사를 인용 보도한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포천 중문 의대 차광렬 학원장과 콜롬비아의대 산부인과 로저리오 로보 과장이 공동 연구한
내용을 생식의학 전문지 '저널 오브 리프로덕티브 헬스(Journal of Reproductive Health)지’ 최근호에
보고한 연구 결과입니다.
이 연구팀은 98-99년 서울 강남 차병원에서 불임치료 중이던 199명의 사진을 환자 몰래 미국, 카나다,
호주의 기독교인들에게 보내서 기도를 요청했답니다.
그리고 기도 요청하지 않은 사람들과 임신 성공률을 비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연구진이 놀랄만한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즉 기도를 받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서 임신성공확률이 2배나 높았다는 것입니다.
로보 박사는 연구 결과가 과학적으로 너무나 설명할 수 없고 황당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두 집단 사이의 차이가 너무도 명백해서 그냥 묻어둘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뉴욕 타임즈지는 이런 결과보고는 이 건 외에도 전에 여러 차례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보도가 무엇을 말해줍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고,
내 기도에 이렇게 응답하셨다는 체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이렇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름대로 기도 응답에 대한 간증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런 구체적인 응답의 체험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때 그 감사가 진정한 감사가 될 수
있습니다. 감사 중의 감사는 바로 체험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입니다.
환난 중에 드린 감사
오늘 본문의 시인은 정말 환난을 심하게 겪고 있었습니다. 3절을 보면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환난과 슬픔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8절에 내 영혼이 사망 가운데, 내 눈이
눈물 가운데, 내 발이 넘어짐 가운데 있었다고 했습니다.
11절을 보면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시인은 정말 큰 시련과 환난을 겪었었고 그러면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살전 5:18을 보면 주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라!"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언제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기쁠 때도 감사하고 슬플 때도 감사하라 는 것입니다.
성공할 때도 감사하고 실패해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도 감사하고 병들었을 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디 쉽습니까?
실제로 우리가 감사할 조건이 있을 때는 감사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다보면 감사할 수 없을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감사보다도 원망이 나오고 감사보다도 불평이 나올 때가 더 많습니다.
문제는 그 때도 감사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사할 수 없을 때,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올 때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느냐 하는 것 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유대 탈무드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랍비인 아키바라는 사람이 개와 나귀와 함께 여행하던 중에 밤이 되어 빈집에 들어가 램프 를 켜고
있었답니다. 그때 바람이 불어 램프가 꺼졌답니다. 아키바는 투덜대며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맹수가 개와 나귀를 물고 간 흔적이 보였다.
그는 낙심하며 가까운 마을에 들어섰는데, 가서 보니 마을이 도적 떼를 만나 많은 사람들이
죽는 등 온통 쑥밭이 되었다. 아키바는 그제야 감사했다. '램프가 안 꺼졌다면, 개나 나귀가 먼저
맹수에게 물려가지 않았다면 나도 도적 떼에게 죽었을 텐데. 화가 복이 되었구나' 라고 했 다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현재의 상황만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그 약속을 믿을 때 환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평 대신 감사, 원망 대신 찬양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현 상황만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십시오.
오늘만 보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펼치실 내일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멀리 보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좀 더 멀리 보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기차에서 신문팔이를 하며 틈틈이 공부했습니다.
그는 열차 한 모퉁이에 실험실을 만들어 놓고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기차가 흔들려 실험실의
약품이 쏟아져 기차에 불이 붙고 말았습니다. 차장이 급히 달려와 불을 껐습니다. 노발대발한 차장은
에디슨을 열차 밖으로 내동댕이 쳐버렸습니다. 이 때 에디슨은 열차 밖 으로 떨어지면서 불행하게도
다치게 되었고 그 결과 귀가 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불평하거나 원망하기 않고 연구를 계속하여 위대한 발명왕이 되었습니다.
후에 그는 옛일을 술회하면서 "나는 그때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귀에 딴 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연구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 감사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환난이 내게 화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환난이 이 시련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든지 아니면 적어도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허락하신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으면 결국은 이 시련이 내게 유익이 될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게 됩니다.
욥의 신앙에서 보듯이 욥은 그 모진 시련을 견디면서 하는 말이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오 취 하신자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했습니다. 이 시련이 하나님께서 주셨거나 아니면 다 아시면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시거나 우리를 멸망 가운데로 떠미시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환난이 오는 것은 우리를 연단하셔서 정금처럼 만드시기 위함이요, 또한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믿으면 환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하는 것이야말로 감사 중의 감사입니다.
그래서 환난과 시련이 다가오면 일단 감사하십시오. "주님 감사합니다. 이 시련이 제게 유익 이 되기
때문에 보내 주셨는 줄로 믿습니다. 이 시련을 달게 받게 하시고, 이 시련을 통해 더 풍성한 은혜를
받게 하시옵소서."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그 시련은 잠시 왔다가 지나갈 것이고, 그 시련은 정말 내게
단 약이 될 뿐 아니라 내게 큰 복이 될 것입니다.
행동하는 감사
13-4을 보면 시인이 어떻게 감사를 표할 것인가 스스로 다짐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것이며 서원을 갚을 것이라는 다짐입니다.
즉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고,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하고 또 그 서원을 갚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서원이 무엇입니까?
이 서원은 의무 사항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 고 명령하신 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것이고, 또 그 약속을 지켜 가는 것을 말합니다.
70년대 미국의 팝계를 주름잡던 올리비안 뉴튼존이라는 여 가수를 아시는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녀는 [let me be there]라든지 [phisical] 같은 노래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고 그래미상도
여러 차례 수상할 정도로 미국 팝계의 전설적인 여왕으로 한 세대를 풍미했었습니다.
이 사람이 한참 잘 나갈 때 사업에 손을 댔습니다. 청바지와 캐주얼 옷을 파는 브랜드를 만들어서
처음에는 한참 잘 나갔었습니다. 그런데 과대하게 확장하면서 부도를 맞게 됐습니다. 때맞추어 낸 음반
이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큰 고통을 겪게 되면서 건강도 악화되었습니다.
병원에서 검진하는 동안 92년에 유방암이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의사의 말이 어렵겠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why me 하나님 왜 하필이면 접니까?"
원망하며 보냈습니다. 그러던 언제부터인가 본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평안이 찾아들었고 감사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가 데뷔 곡으로 불렀던 노래 제목처럼 "if not for you 당신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라고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의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당신의 유방 에 암세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이후 그는 암 환자들에게 간증하러 다니고 환경 운동가로서 환경 개선에도 앞장
을 서고 있습니다.
올리비안 뉴튼존은 하나님께서 유방암으로 죽게되었던 자기, 모든 것을 다 잃고 끝났어야 할 자기를
다시 살려주셨다는 사실을 감사하면서 이제 남은 삶을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고,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고,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고백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고, 축복을 받았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은혜와 축복이
우리 안에 완성되고 실현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감사가 단지 말로만 그쳐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몸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원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발적으로 약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서원을 갚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그 약속을 지키고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진정한 감사가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감사의 조건을 찾기보다는 원망과
불평의 조건 찾기에 민감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 환난 중에 드리는 감사,
행동으로 드리는 감사를 드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