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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죽음을 알아야 인생의 목표도 있다

겸손히 2007. 3. 15. 19:27

인생 계획을 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한번 인생 계획을 거꾸로 짜보는 것을 권한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것인 인간이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마음을 비우고 우리의 소망을 그려보자.
얼마 전 우연히 신문에서 일본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10년 동안 '죽음준비교육'이란 것을 해왔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는 33년 동안 사회과목을 가르쳐온 다카하시 마코토 氏로 청소년 자살, 탈선, 비행을 예방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죽음준비교육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못지않게 입시경쟁이 치열한 일본 사회에서, 더군다나 복음화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곳에서 '죽음'과 '죽음 이후의 세상'이라는 철학적인 주제를 10년 동안이나 가르쳐왔다니, 다카하시 마코토 氏도 보통 내기는 아닌 것 같다. 어떤 자기 확신과 신념이 있길래 앞길이 구만 리 같은 학생들을 앞에 두고 '죽음'에 대해 이야기 했던 것일까?

청소년기에 해보는 죽음에 관한 사색이라… 사실 나 역시 청소년기에 피상적으로나마 죽음에 관한 진지한 생각을 해보았던 것 같다. 나의 청소년 시기는 마치 먹구름에 비가 내리는 미니 홈피의 아이콘처럼 매일매일이 우울 모드였다. 딱히 이렇다 할만한 엄청난 시련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는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었다. 내가 원하고 주위에서 원하는 모습에 미치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한 불만족과 스트레스는 삶의 의욕을 천천히 조용하게 좌절시켰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자율학습 시간이 되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창문 밖을 내다보며 잡념들에 휩싸여 있곤 했다. 그러다가 하늘이 근심 없이 푸르던가, 애상에 잠긴 것처럼 어둠이 짙어지면 '창문 밖으로 번지점프를 해보고 싶다' 등의 시답지 않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언젠가 이런 얘기를 친구에게 나누었더니, 그게 '자살충동'하고 뭐가 다르냐고 친구가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도대체 문제가 뭔데? 뭐가 그렇게 힘들어, 그렇게 약해가지고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고……."
이런 식으로 당시의 나를 다그친다면, 당시의 나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이렇게 말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살기 싫어요."
그랬다. 나는 그렇게 무섭고 험한 세상이라면 제대로 잘 살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지 살기 위해 강해져야만 한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몰랐다. 삶에 대한 의욕도, 기쁨도, 의지도 없이 삶에 대한 패배의식만 낮게 깔려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고열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었다. 일주일을 입원해 있으며 처음 며칠은 정말 너무 열에 시달려 이러다가 죽는구나 싶었다. 순간 두려웠다.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차라리 아무런 의식이 없는 無의 상태로 가면 좋으련만, 어렸을 적부터 교회에 다닌 나로서는 천국과 지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사 천국에 간다고 해도 하나님을 만나 뵈면 내가 선 자리가 너무 민망할 것 같았다. 도대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 그저 죽을 때까지 시간만 때우고 온 것은 아닌지… 하나님께 드릴 말씀이 아무것도 없겠구나 싶으니 순간 나는 갑자기 죽기 싫어졌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좀 더 멋진 죽음, 행복한 죽음, 하나님께 갔을 때 적어도 살아온 것이 민망하지 않을 죽음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너무 뻔한 경험담인가? 하지만 경험을 통해 가슴으로 깨달아지는 원론적인 사실들은 적어도 그 자신에게는 생각처럼 평범하거나 초라하지 않다. '왜 진작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하는 후회와 이제라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퇴원 한 후, 학교에 돌아왔을 때부터는 전년도 수능 기출 문제집 독파하며 꽤 열심히 대학 입시를 준비했으니 말이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라는 책을 보면, 온 몸의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어 나중에는 심장의 근육까지 기능을 멈추어 생명을 잃게 되는 '루게릭' 이라는 병에 걸린 모리 선생님이 나온다. 선생님은 자신의 심장이 멈추기 전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자신의 제자이며 이 책의 저자인 미치를 만나 삶과 죽음, 사랑과 평화 등 인생에 대한 토론식 수업을 한다. 어느 날, 선생님은 미치에게 이런 말을 한다.
"미치,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매우 명확해진다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위해 살아있는 내내 수고해야 함을 강조한다.

인생 계획을 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한번 인생 계획을 거꾸로 짜보는 것을 권한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것인 인간이지만, 사람의 마음에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름대로 인생의 마지막을 상상해보라. 현재 사람의 평균 수명대로 80세 전후를 끝점으로 해서 거꾸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생 계획을 짜보는 것이다. 80대 기대하는 죽음의 모습을 위해 70대에 준비해야 하는 것, 그리고 60대, 50대, 40대… 이런 식으로 내려가다 보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들이 생길 것이다. 그와 함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 인생이 책임져야 하는 궁극적인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다카하시 마코토 氏는 일본 기치조오시 교회의 장로이다. 그는 그동안 기독교 신앙이 자신을 인도했다고 말하며 죽음은 마치 나비가 고치를 뚫고 떠나는 것처럼 육체를 벗어버리는 변화에 지나지 않고, 사후 생명은 반드시 있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왔다고 한다. 아마 그의 '죽음준비교육'은 일본 청소년들에게 꽤 설득력 있고 깊이 있는 전도가 됐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미 하나님을 믿는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더 진지한 신앙인으로 성숙될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것이다.
"당신은 어디서 왔고,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 존재입니까?"
다카하시 마코토 氏의 이 질문을 통해 일본의 청소년뿐만 아니라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까지도 인생의 진정한 목표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블러그자료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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