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9살, 정말 가능했을까?
창세기 5장에는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는 10고조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옛 시대의 기록이어서 자세한 행적과 사상들에 대해 구체적인 소개는 없으나 매우 이색적인 사실이 나타나 있는데 곧 그들의 수명이다.
므두셀라가 9백69세를 산 것을 비롯해 9백년 전후의 긴 수명이 소개되고 있다. 이같은 기록은 많은 비평학자들에 의해 자주 역사성이 의문시되어 왔고 동시에 창세기의 고대사 부분에 대한 역사성 비평으로 이어지는 논란이 있어 왔다. 과연 옛사람들은 9백년의 수명을 지니고 긴 세월을 살았을까?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이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그 근거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은 이 창세기 5장의 해석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의미있게 여기고 있다.
우선 긴 수명이 가능한 근거가 충분하다고 보는 것이 대체적 견해이다.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죽음 없는 존재로 지으셨다 따라서 그 영향으로 옛 사람들은 긴 수명을 가졌다고 해석하기도 한다.(kalisch) 혹은 옛사람들의 뛰어난 경건 생활이 원인이 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원시사회의 자연 환경과 식물의 우수성들이 장수의 근거가 되기도 한 것으로 여긴다.
또한 어떤 이는 초기 원시사회의 인류의 확산을 위해 생육하고 번성하는 기간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라고 여기기도 한다. 여하튼 우리는 이 긴 수명의 옛사람들에 관한 기록을 지나치게 상징화 하거나 문학적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그 역사성에 대한 인정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창세기 5장의 해석은 긴 수명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천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았지만 결론은 언제나 `죽었다'라는 것이다. 인간사회 속에 죽음의 보편성이 역사적 현실로 자리잡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다. 인간의 범죄에 대해 `정녕 죽으리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 안의 모든 사람에게 임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어지는 창세기 6장 이하의 홍수 사건은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임을 더욱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롬5:12에는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보편적 사실인 것을 성경은 누누이 강조한다. 히 9:27에서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라 하였고 다윗은 “모든 사람의 가는 길”이라 하였다 이 죽음의 역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만 극복되고 정복되어진다. 성경은 예수께 대한 믿음으로 영생에 이르고 믿음으로 부활에 이르러 죽음에 대하여 비로소 승리케 됨을 가르친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내가 곧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하셨다 창 5장의 옛 조상들의 긴 수명은 그 완벽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이 영생할 수 없었고 결국 죽음에 이르러야 했다는 죄인의 한계를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
창세기 5장에는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는 10고조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옛 시대의 기록이어서 자세한 행적과 사상들에 대해 구체적인 소개는 없으나 매우 이색적인 사실이 나타나 있는데 곧 그들의 수명이다.
므두셀라가 9백69세를 산 것을 비롯해 9백년 전후의 긴 수명이 소개되고 있다. 이같은 기록은 많은 비평학자들에 의해 자주 역사성이 의문시되어 왔고 동시에 창세기의 고대사 부분에 대한 역사성 비평으로 이어지는 논란이 있어 왔다. 과연 옛사람들은 9백년의 수명을 지니고 긴 세월을 살았을까?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이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그 근거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은 이 창세기 5장의 해석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의미있게 여기고 있다.
우선 긴 수명이 가능한 근거가 충분하다고 보는 것이 대체적 견해이다.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죽음 없는 존재로 지으셨다 따라서 그 영향으로 옛 사람들은 긴 수명을 가졌다고 해석하기도 한다.(kalisch) 혹은 옛사람들의 뛰어난 경건 생활이 원인이 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원시사회의 자연 환경과 식물의 우수성들이 장수의 근거가 되기도 한 것으로 여긴다.
또한 어떤 이는 초기 원시사회의 인류의 확산을 위해 생육하고 번성하는 기간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라고 여기기도 한다. 여하튼 우리는 이 긴 수명의 옛사람들에 관한 기록을 지나치게 상징화 하거나 문학적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그 역사성에 대한 인정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창세기 5장의 해석은 긴 수명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천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았지만 결론은 언제나 `죽었다'라는 것이다. 인간사회 속에 죽음의 보편성이 역사적 현실로 자리잡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다. 인간의 범죄에 대해 `정녕 죽으리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 안의 모든 사람에게 임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어지는 창세기 6장 이하의 홍수 사건은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임을 더욱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롬5:12에는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보편적 사실인 것을 성경은 누누이 강조한다. 히 9:27에서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라 하였고 다윗은 “모든 사람의 가는 길”이라 하였다 이 죽음의 역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만 극복되고 정복되어진다. 성경은 예수께 대한 믿음으로 영생에 이르고 믿음으로 부활에 이르러 죽음에 대하여 비로소 승리케 됨을 가르친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내가 곧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하셨다 창 5장의 옛 조상들의 긴 수명은 그 완벽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이 영생할 수 없었고 결국 죽음에 이르러야 했다는 죄인의 한계를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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